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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

운영자 | 22.12.22 | 조회 9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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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 시 부문 

 「그런 믿음」 외 4편_최주연 / 명지대 행정 3년

· 소설 부문 

「안나」_김여름 / 서울예대 극작 4년

· 희곡 부문 

「축제」_김나경 / 한예종 극작 3년

· 평론 부문 

「돌봄의 낭만화를 벗어던지는 문학」_민선혜 / 서울예대 문예창작 4년

· 동화 부문 

「시화 도난 사건 : 김아라 관찰일지」 외 1편_남가현 / 단국대 문예창작 2년

 

 

심사평

· 시 부문 

  2022년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에는 총 376명이 응모하여 지난해 297명보다 크게 늘었다. 9월부터 11월까지 작품 공모 기간을 거쳐 11월 중순부터 3주 동안 세 명의 심사위원이 1차 심사를 진행하였다. 최종 심사에는 10명의 작품을 대상으로 하여 다시 열흘 동안 심층적으로 읽은 후 12월 중순 심사 회의에서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의 사유와 감각의 지평을 넓힐 역량 있는 새로운 시인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시를 투고할 때의 설렘과 정성, 수많은 고민들이 떠올라 한 작품이라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작품의 완성도, 문장력과 사유의 깊이, 새로운 표현과 함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모라 패기와 실험정신, 언어적 탐색이나 모험적인 시도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이야기하였다.   

   많은 응모자들이 모두 치열한 의식과 자신만의 고유한 시적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투고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사회적 자아가 아니라 시적 자아의 내밀한 세계를 보여주려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으며, 공동체 혹은 세계에 대한 이해보다 너와 나와의 관계의 비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본선에 오른 작품들은 대체로 고유한 개성과 시적 세계를 펼쳐주었다. 「겨울 비행」 외 4편은 내면을 조용히 드러내는 방식이 단정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차분하게 세계와 사물을 응시하는 집중된 시선이 주목되었다. 「루의 부분」 외 4편은 개성적인 호흡과 언어로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범고래의 일부분」 외 4편은 독창적인 발상으로 흥미로운 전개 방식을 보여주었다. 「슈퍼바이러스」 외 4편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미성년 화자의 언어로 독특하게 구축하였다. 「이상한 화요일」 외 4편은 조용한 서정과 발랄함, 장면 전환이나 현상의 발생을 조용하게 응시하는 미덕이 돋보였다. 위의 시편들은 모두 일정한 수준을 이루고 있으나, 일부는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담아내려고 하다 시적 긴장을 놓치기도 하였다. 언어의 압축과 정서를 절제하는 힘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앞으로 시 쓰기에서 아직 발아하지 않은 이 분들의 가능성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꽃피길 기대한다.

   오랜 토론과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그런 믿음」 외 4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다섯 편 중 하나인 「여름 궁굴리기」는 기억의 시간을 공간으로 치환하여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그런 믿음」은 삶의 현장에서 기본적으로는 혼자가 아니라는 태도를 이야기하는 소통의 가능성을 드러내 준다. 이 시편들은 전체적으로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은 아니지만 솔직하고 일상적 풍경에서 포착한 감성을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구축하고 있다. 특히 시간의 흔적과 기억의 문제를 공간적 이미지로 엮어나간 솜씨가 훌륭했다. 당선자의 시적 세계가 더욱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김경후, 문태준, 이기성

 

· 소설 부문 

  올해 응모작 총 355편 중에서 10편의 단편소설이 본심에 올랐고, 그중 당선작 후보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세 편이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SF, 친밀한 관계 속에서 제도와 개인을 고민한 전통적 형식의 소설, 인간이 비인간으로 변모하는 알레고리 소설, 이 세 편의 소설이 보여준 각기 다른 색깔은 젊은 예비 작가들의 관심사와 최근 한국문학의 경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물고기의 겨울잠」은 매력적인 SF소설이다. 파괴된 해안도시에 남은 노동자와 버려진 휴머노이드 소년이 함께 생활하며 외로움을 나누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마지막 여정에서 방전되어 전원이 꺼지는 휴머노이드와 한계 상황에 맞닥뜨린 휴먼의 삶의 대비 속에서 디스토피아적 비극과 두 존재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메커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제목에 등장하는 겨울잠과 결말에 나타난 바다에 대한 상징이 적확하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오 마이šœ!」은 고등학교 친구 šœ의 결혼 소식을 엄마에게 알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엄마와 함께 친구의 결혼식 플라워샤워를 하는 것으로 끝나는 소설이다. 범주화되기에 충분한 서사를 가진 두 인물을 화자의 입장에서 대상화하기보다는 서로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서로의 시선을 놓아두는 거리감이 인상적인 소설로, 두 인물의 이야기를 뜨개질의 코를 연결하듯 막힘없이 매끈하게 엮어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평이하다는 인상을 주었고 그것이 이 소설을 안전한 영역에 머물게 했다는 점에서 패기와 참신성이 아쉽게 느껴졌다. 

   「안나」는 빈티지 가구 편집숍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안나’라는 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안나를 마주하자마자 사랑에 빠지는 화자의 목소리는 독창적이면서 설득력이 있어서, 심사위원들 또한 안나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인간(나)이 비인간(안나)이 되는 과정을 무리 없이 그려낸 작가의 역량에 신뢰가 갔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쓸모있는 의자’가 되고 싶은 청년 세대의 절박한 마음 또한 처연하게 다가왔다. 다만, 소설 중간에 삽입된 여러 장의 사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소설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과 이 또한 작가의 의도로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 가운데, 사진의 유무와 관계없이 「안나」의 작품성이 당선작으로 내놓기에 손색이 없다는 데 동의하며 새로운 작가의 출발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하기로 했다. 

 

권지예, 김유담, 최은미

 

· 희곡 부문 

  올해 희곡 부문 응모작은 60편으로 각기 개성적인 색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간혹 극과 무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작품들도 눈에 띄었는데 희곡이 가져야 하는 극성과 무대 언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대사는 말을 주고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을 진전시키는 기능을 한다. 내면 풍경을 묘사하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데서 머문다면 극을 끌어가는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8편이다. 이 작품들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발상이 흥미로웠다. 

「사진 찍을 때 발효 음식을 얘기하는 이유」는 ‘시간’의 의미를 상황을 순간 포착해 고착시키는 사진과 시간의 미학인 발효식품에 빗대 표현한 부분이 돋보였다. ‘시간’이란 관념적인 소재를 붙들고 밀고 간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극적 사건보다는 담론을 설파하는 설명에 치우친 점이 아쉬웠다. 

「사각과 원」은 코인세탁소를 중심으로 ‘사각’과 ‘원’이라는 상징성이 다분한 이름을 지닌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나간다. 장소가 지닌 의외성과 인물이 드러내는 개성이 흥미로웠다. 다만 인물들의 대사가 자기 내면의 토로에 치중되어 대화라기보다는 독백에 가깝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스트라이크」는 풍자를 노린 블랙코미디로 동시대 한국 사회를 건물에 숨어 사는 부부와 볼링장, 지친 경찰이라는 소재로 풀어낸 점이 인상 깊었다. 사회에 대한 발언을 알레고리로 선보인 점이 돋보였다. 그리고 풍자의 대상을 외부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생존에만 매달리게 된 현대인의 상황까지 확장시킨 점이 공감을 샀다. 하지만 이런 안팎 모두를 노리는 풍자는 양날의 검이 되어 ‘풍자 대상’의 그늘을 여실히 드러내지 못하고 양비론에 머물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복숭아 심지」는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비유와 상징이 풍성하고 대사의 말맛도 살아 있다. 괴 바이러스가 만연한 상황도 상징성이 풍부하며 복숭아에 빗대진 이미지도 생생하다. 다만 분량이 규정을 초과하여 넘친다는 점과 넘치는 이야기들이 반복과 설명에 치우친다는 점이 아쉬웠다. 장막극으로 잘 가다듬어주길 부탁드린다. 

「화성에 야구장」은 화성에 세워진 야구장에서 두 인물과 라디오가 펼치는 이야기이다. 발상이 참신하고 장소도 독특하다. 2인극의 단조로움을 라디오라는 소재로 다채롭게 만든 점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배경이 굳이 ‘화성’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웠고 대사가 극을 진전시키기보다는 상황에 대한 설명, 내면 토로에 머문 점이 아쉬웠다. 이 흥미로운 공간과 소재를 밀고 나가 두 인물이 더 멀리까지 나갔으면 좋겠다.

 「제자리 뛰기」는 자살을 결심한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자살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상큼하고 발랄하게 다룬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덤덤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면서도 인물의 고민을 노골적인 푸념으로 드러내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민이 지나치게 밝아서 인물들의 갈등이 깊이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이 부분과 함께 소녀들의 대척점에 놓인 엄마 캐릭터가 지나치게 전형적인 것도 마음에 걸렸다. 

「빗금」은 자신이 처한 황량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청소년을 주인공 삼아 전개된다. 안정적인 극 구성과 갈등 구축, 능숙한 대사의 활용은 이 작품이 가진 장점이다. 그러나 인물들이 놓인 상황과 그들이 끌어가는 사건이 더 본질적인 지점, 성적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동시대의 부조리한 학교의 모순을 드러내지 못하고 청소년의 일탈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것은 아쉬웠다. 

「축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인물이 진짜 자살을 한 것일까? 그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려는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부조리하고 한편으로는 블랙코미디적이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은 개성 있는 캐릭터, 극을 진전시키는 정제된 대사, 인물들에게 던져진 상황이 인물의 목적과 동기를 통해 사건으로 발전해 나가는 안정적인 구성이 그 어떤 작품보다 눈에 띄었다. 

 

   두 심사위원은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축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축제」가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희곡의 극성을 출중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심사위원들은 이견이 없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앞으로 한국 희곡을 이끌 출중한 작가로 성장해주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선정되지 못한 모든 분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김나정, 차근호 

 

· 평론 부문 

  해마다 역량 있는 신진을 만날 수 있는 ‘대산대학문학상’에서 특히 ‘평론’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부문이다. 당찬 관점과 색다른 감각으로 문학 현장에 활기를 더하는 글이 매회 평론 부문을 통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평론 부문에는 팬데믹 이래 가장 높은 편수라 할 수 있는 총 32편이 접수되었다. 심사위원들은 이 글들이 시대의 고민이 녹아든 주요 작품을 평자 나름의 방식으로 읽고 다른 이들과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평론 작업의 의의를 새삼 새기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응모된 글마다 치열함을 느낄 수 있어 고무적이었다. 투고한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먼저 1차 심사를 통해 2차에서 논의할 작품 총 여섯 편을 선별하였고, 2차 회의에서 선별된 작품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최종 심사를 진행하였다.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의 논의 선상에서 떠나지 않았던 작품은 세 편이었다. 

   「정착하는 여성의 계보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최은영 『밝은 밤』을 읽고」는 정세랑과 최은영의 소설을 가부장제에 귀속되지 않고 해방에 이르는 여성들의 서사로 한국문학사에 위치시키는 글이다. 두 작품을 대비시키는 구도로 전개되는 이 글은 짜임새 있는 구성을 통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분명하게 각인시킨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계 서사’의 계보를 세우는 과정에서 개별 작품이 지닌 특색이 섬세하게 독해되기보다는, 소설을 통한 역사적 사실 자체의 추출에 공을 들이고 있어 작품 논의가 해설에 그치고 만 느낌이다. 작품을 경유해서 하고자 하는 말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도 중요하지만, 비평은 어디까지나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 

   「완전한 작별의 신화 : 김초엽과 황정은이 오늘날의 매체적 경험을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하여」는 김초엽과 황정은의 소설을 상실이 사멸한 세계를 견디기 위한 전략적인 서사로 예리하게 읽어낸 글이다. 이 글에서 상당 부분 할애되고 있는 김초엽 작품에 대한 분석은 근래에 만났던 여느 김초엽론과 비교했을 때에도 상당히 흥미로운 관점과 논리로 전개되고 있어 쉽게 눈을 뗄 수 없었다. 특유의 통찰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글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균형감을 확보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를테면 기존 비평에서 제기하는 논의에 대한 평가 및 정리 없이 홀로 두서없이 논리를 펼쳐나가는 점이나, 결론 부분에 등장하는 황정은 작품에 대한 분석에서 김초엽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발휘되는 예리함이 없었다는 점이 그러했다. 참신한 관점을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현재 부족한 구성력을 채우며 문학적 지형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면 조만간 무서운 신예 비평가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돌봄의 낭만화를 벗어던지는 문학」은 시의성 있는 주제와 안정적인 서술, 균형감 있는 구성으로 독자가 안심하며 읽어나가도록 이끄는 글이다. 특히 김유담과 정소현 작품에 대한 분석이 세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소설이 가진 매력을 비평이 한층 살리고 있었다. 단, 정소현의 소설을 분석할 때 기존 개념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난잡한 돌봄’이란 표현을 고스란히 사용하느라 작품과 분명하게 조응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해당 부분을 글의 맥락에 따라 ‘상투화되지 않은’, ‘잡다한’과 같은 표현으로 유연하게 번역 및 활용했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비평은 많은 이들의 공부에 도움을 주지만, 그 이론을 어떻게 소화해서 사유의 확장에 활용하는지를 자기논리로 설득하는 작업 역시 비평의 몫이다. 자신만의 표현 및 논리를 밀고 나갈 때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될 것이다. 아밀의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앞의 두 작가의 작품 분석에 비해 설득력이 높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단단한 시야와 치밀한 구성, 동시대에 필요한 문제제기를 확보하고 있는 이 글의 매력이 미더웠다. 오랫동안 문학 공부에 진지하게 임했을 투고자들의 시간이 저절로 느껴졌다. 그 각각의 시간을 격려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을 「돌봄의 낭만화를 벗어던지는 문학」으로 뽑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양경언, 한기욱 

 

· 동화 부문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에 응모한 이는 모두 41명이었고 원고지 40장 내외의 단편을 두 편씩 낸 것을 심사하였다. 응모자와 편수는 많지 않았지만 예년에 비해 대학생 창작자들이 동화에 대해 상당한 이해와 애정이 깊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청년인 자신의 고민을 동화에 빌어 토로하거나 관념에 치우치는 이야기들이 적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런 경향이 보기 드물었고 그 자리에 대신 어린이에 대한 관심, 동화라는 형식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학부나 동아리에서 아동문학을 공부하거나 개인적인 관심으로 동시대 동화를 접할 기회가 늘어났을까 짐작해본다. 이런 변화는 일단 환영하는데 다만 공부가 병행된 만큼 대학생다운 신선한 발상, 패기가 약간 줄어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기성 작가의 동화보다 크게 떨어지지 않지만 그만큼 기시감이 드는 이야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기존 아동문학을 공부하길 바라지만 동시에 기존 아동문학의 한계와 관성을 뛰어넘으라 요구하는 것은 심사자의 욕심일까? 하지만 책으로 외국어를 공부했더라도 실전에서 외국인과 소통할 때는 공부했던 문법 따위는 잊어야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고 자기 실력도 느는 법이다. 모쪼록 많은 대학생 창작자들이 동화라는 세계 안에서 자유로이 놀고 성장하는 여행자가 되길 바란다. 

   본심에 올라와 논의한 작품은 6명이 쓴 12편의 작품이었는데, 한 사람이 제출한 두 편의 평균치를 보기보다 일단 인상적인 한 편을 주로 논의하고 나머지 한 편은 응모자의 평소 생각과 집필 수준을 보는 참고 자료로 삼는 방식을 택하였다.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이 대개 현재 대학생들의 건강한 어린이관,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어 흐뭇했고 심사자들도 배우는 바가 있었다. 

   「뭘 모르는 애들」은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퍼져 있는 성차별, 연령 차별을 경쾌하게 돌파하는 이야기다. ‘아줌마’들이 즐기는 운동을 경시하는 일부 남학생은 ‘뭘 모르는 애들’이라며 ‘아줌마는 멋있는 존재’임을 선언하는 아이들이 무척 미더웠는데 다만 편견을 가진 친구들은 무시하자는 발언이 자칫 편 가르기로 확대될 수 있고, 이 멋진 선언이 자연스러운 어린이의 생각이라기보다 아직은 대학생 언니 오빠의 생각 같았던 것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이름 바꾸는 날」은 한 교실에 같은 이름의 친구가 여럿 있는 고민거리를 ‘어린이 스스로 이름을 짓게 하자’는 정면 돌파로 풀어냈다. 이 이야깃감은 근래 기성 동화에서도 종종 등장하는데 이렇게 후련하고 공감 가는 해결 방식은 드물기에 눈길을 끌었다. 허나 이 역시 어린이들에게 어른(청년)이 해주는 조언의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내가 만든 바다」 외 한 편을 낸 응모자는 SF아동문학에 대한 일관된 관심과 완성도가 돋보였지만 단편에 담기에는 세계관이 너무 커서 바쁘게 설명하느라 분량과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중편이나 장편으로 이야기를 키워가길 권해본다. 지하철 안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내 탈을 부탁해」도 마찬가지 한계가 있었다. 모쪼록 이번 결과에 실망하지 말고 이후에라도 자신의 이야깃감에 적합한 크기의 집을 잘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최종적으로 경합을 벌인 작품은 「나는 슈퍼히어로로 살기 싫다고!」 외 1편과 「시화 도난 사건 : 김아라 관찰일지」 외 1편이었는데 두 작품의 경향이 사뭇 달라서 최종 선택까지 토론이 길고 흥미로웠다. 「나는 슈퍼히어로로 살기 싫다고!」는 갑자기 얻은 초능력으로 이웃을 돕는 영웅이 되었지만 준비가 덜 된 자신에게 한계를 느끼고 잠시 유예를 신청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다. ‘찌릿’과 ‘번쩍’이라는 단순명료한 말로 초능력과 자기 인식을 대변한 재치가 놀라웠고, 아무리 좋은 뜻이어도 어린이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기보다 사회가 기다려주고, 어린이 스스로 자기 권리를 찾아가는 마무리도 인상 깊었다. 「시화 도난 사건」은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동급생을 의심하고 뒤를 쫓다가 오히려 그 친구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동질감을 갖게 되는 아이러니를 담았다. 편견과 오해에서 시작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이해로 나아가는 방향성이 건강하고, 자칫 악역으로 몰아갈 법한 인물까지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친구로 유머러스한 여유를 발휘한 것도 미더웠다. 대학생 창작자답지 않게 현재 어린이의 면면, 교실 생활을 사실감 있게 그려낸 것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두 응모자 모두 각자의 훌륭함과 매력이 있었지만 작품의 완결성, 문장의 숙성함 같은 심사 기준을 적용했을 때는 아무래도 「시화 도난 사건」에 손을 들어주게 되었다. 「나는 슈퍼 히어로로 살기 싫다고!」는 재치가 돋보였지만 어휘와 문장이 조금 거칠고 덜 숙성된 채로 내뱉는 느낌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가진 재치와 매력은 의심하지 말고 다만 좀 더 호흡을 깊이 하고 좀 더 시간과 공을 들여 숙성시킨 세계로 발전시켜가길 바란다.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된 「시화 도난 사건」 외 1편은 함께 제출된 다른 작품을 보더라도 어린이의 교실생활과 그에서 비롯되는 갈등,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그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는 사회적 성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다른 대학생 창작자들과 큰 변별성을 보여주었다. 동화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전유하기보다 동화는 어린이의 것이고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배우는 것이라는 원칙에 가장 부합하였다. 조만간 아동문학의 현장에서 동지로서 반가이 만날 것을 기대해본다. 

 

박숙경, 임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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