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시 부문「뮤트의 세계」 외 4편_이지은 / 중앙대 문예창작 3년· 소설 부문
「죄」_박동현 / 서울예대 문예창작 3년· 희곡 부문
「스파링」_박한솜 / 서울예대 극작 3년· 평론 부문
「감각의 질서와 그녀들의 환상통 - 김행숙의 <사춘기> 다시 읽기」_하혁진 / 서울예대 문예창작 2년 · 동화 부문
「천국에서 만나요」 외 1편_박공열 / 단국대 문예창작 4년
심사평· 시 부문
이번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에는 총 297명이 응모했다. 지난해 383명에 비하면 응모자 수가 현저히 감소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이는 팬데믹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읽혔으나 그럼에도 자신만의 시적 세계를 펼쳐내고 있는 응모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11월 한 달여에 걸쳐 세 명의 심사자가 각각 99명 응모자의 작품 495편씩을 읽었고 11명의 작품 55편을 선별하였다. 12월 초에 가졌던 본심에서는 심사자들이 함께 모여 11명의 작품을 재차 읽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두 편의 흥미로운 작품을 응모한 경우는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르게 완성도를 유지하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바로 그 이유로 어느 때보다 응모작에 숨겨진 재능의 핵심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최종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디스토피아」 외 4편, 「정원에 공」 외 4편, 「뮤트의 세계」 외 4편이었다.
최종 대상작은 아니었지만 심사자들의 시선을 끌었던 몇 편의 개별 작품에 대해 언급하자면, 우선 「앵무 스피커에 관한 토론」은 이 세대가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귀한 지점이 있어 오랫동안 심사자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언어화한 「뭉뚱그려 패치워크」도 흥미롭게 읽었던 작품 중 하나다. 다만 풍성하게 큰 그림을 그려내고는 있지만 ‘파리’라는 한정된 공간이 작품의 확장을 막아선다는 지적이 있었다. 「심쿵 펀치」, 「망겜 유저가 된 기분은 어떠세요?」, 「시티보이룩의 순정」 세 편이 지닌 경쾌한 리듬을 따라 읽는 즐거움이 컸다. 리듬을 의식하면서 펼쳐 보이는 긴장감 있는 세계는 시의 중요한 미덕을 안고 가는 작업이라서 끝까지 심사자들을 고민하게 했다. 나머지 두 작품이 지닌 가벼움이 끝내 아쉬웠다.
최종심에서 언급된 「정원에 공」 외 4편은 문장을 쏟아내는 경향이 강했던 이번 응모작들과는 변별되는 지점이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을 한다」의 경우 행간을 확보하면서 섬세하게 언어를 작동시키고 있어 거듭해서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다만 그 힘이 응모자 개인이 지닌 독특함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이번 응모자들과의 변별적인 지점이 있어 눈길이 갔지만 기존의 시 어법을 갱신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디스토피아」 외 4편은 세 명의 심사자가 마지막까지 숙고하며 읽었던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의 경우 “우리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면요 내가 엄마를 찾아볼게요.”와 같은 구절이 인상 깊어 시를 재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고 언어를 명료하게 사용하는 점, 인류의 쓸쓸한 환부를 무리 없이 서사화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다만 「유키」, 「유리의 마음」의 경우 화자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라 요즘의 시적 경향이 디자인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는 점, 「사춘기」가 시인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 읽혔는데 네 편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이질적인 데다가 감정 표출이 무책임하게 느껴졌던 점들이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반면 「뮤트의 세계」 외 4편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의 접점에서 겪게 되는 문제의식을 회피하지 않으며 집요하게 자신만의 목소리로 펼쳐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심사자 모두가 주목했던 「계육공장, 닭들은 춤을 추고」는 멋있게 잘 쓰려는 노력보다 화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정서를 끝까지 끌고 가보려는 힘이 느껴졌다. 빨리 정답을 내리고 편안하게 ‘강변을 달’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계육공장’의 ‘닭들’처럼 ‘레깅스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자세를 선택하는 쪽이다. 「뮤트의 세계」에서의 화자 역시 섣불리 판단하지는 않되 할 말은 어떻게든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공평하다고요”라는 항변이 자기방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적막하다”는 쓸쓸한 이해에 닿는 균형감에 대한 지지도 있었는데, 이는 아마도 봉합을 위한 것이 아닌 발화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앞으로 그가 자신감 있게 써내려 갈 문장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곧 다른 지면에서 그의 신작시 읽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김경후, 이병률, 임승유
· 소설 부문
응모작 280편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단편은 열 편이었다. 「밤의 온기」 「금붕어 건지기」 「조현(操絃)」은 필력과 기량이 뛰어났으나 스토리가 독자에게 닿았을 때 그 파급력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설의 의미가 재미의 회로를 따라서 생성된다는 점을 인지한다면 이후의 작품은 달라지고 새로워질 것이다.
「관람차의 방식으로」는 유원지의 미아가 된 두 인물의 탈출기로 요약되는데, 냉혹한 현실과 이들을 위로하는 환상 장치의 대비가 매우 인상적이다. 플롯과 밀도를 갖춘다면 잔혹서사의 진면목을 보여줄 재목이다. 「신두리의 낙타」는 사막처럼 건조한 이 세상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떠도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좀더 폭넓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한다면 생에 대한 깊은 시선을 담아내리라 기대한다. 「풍선은」은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로 사망한 연인에 대한 애도를 운구와 화장(火葬)을 통해 세심히 보여준다. 이국 서사를 흥미롭게 형상화했으나 ‘소설의 형식’에 담아내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심사위원의 손에 오래 남은 원고는 네 편이었다. 우선 「재호는 그저」가 보여준 캐릭터의 형상화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었다. 남다르게 조성한 정황 속에서 인물의 대사와 심리가 눈앞에 보이듯 생동감이 넘쳤다. 무게감을 더한 ‘소설적 사건’을 포착한다면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작가로 거듭날 것이다. 「사사로운 것」은 창작자가 창조적 작업을 할 때 타인의 사적 영역을 어디까지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의성을 갖췄다. 특히 화자의 시니컬한 태도와 툭툭 던지는 유머러스한 문장이 상큼하다. 영상문법보다는 서사미학에 좀더 주의를 기울인다면 활로가 보일 것이다.
가장 길게 갑론을박이 벌어진 작품 중 하나인 「낙원 빌라」는 출생 후 어미 형제에게 버림받고 인간에게 목숨이 구제되지만 다시 버림받은 고양이 ‘사라’의 생애담이다. 사라는 낙원 빌라의 그녀 ‘영원’을 절대적으로 믿고 사랑하는 중에 어느 날 이유없이 버림받는다. 길고양이의 세계에 편입된 후 삶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안고 영원을 그리워한다. 고양이 눈으로 바라본 가난한 인간의 삶과 고양이의 한 생을 차분한 필치로 펼쳐보인 수작이다. 인간에 대한 고양이의 순정이 개에 비해서 약하다는 선입견을 수정할만한 이 작품은 상처받은 고양이의 심리묘사가 읽는 이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반면에 「죄」는 자신이 사랑하는 개에 대한 인간의 지독한 애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위의 단편과 대비를 이룬다.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하며 독자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가는 플롯의 짜임새와 주인공의 심리를 밀도 높게 서술하는 문장력이 압도적이다. 전개적 측면에서 다소 거칠고 불안정한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날 것 그대로의 생동감으로까지 보인다. 어떤 측면에서 하등 개보다 더 나을 것 없는 인간이 지닌 이기성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힘이 남다르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으로 한 세계의 이야기를 크고 단단하게 베어내는 야무진 솜씨에 큰 신뢰가 간다. 이 작품을 뽑지 않으면 그야말로 ‘죄’를 짓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이 응모자의 다른 소설을 읽고 싶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두 작품 모두 반려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낙원 빌라」는 고양이의 생을 다룬 기성작품과 어딘가 기시감을 주는 점이 있는 반면에 「죄」는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인간을 상당히 낯설고 드문 캐릭터로 창조하였으므로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투고자들이 보낸 숱한 불면의 밤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제20회 대산대학문학상 당선자는 넥스트 레벨에서 우리 모두의 기대에 응답하기를 기원한다.
권지예, 김희선, 해이수
· 희곡 부문
대산대학문학상에 희곡은 총 61편 접수되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색다른 소재, 참신한 비유와 낯선 시선으로 탱글탱글한 청귤 상자 한 박스를 받았습니다. 한 알씩 맛보며 감탄하고 갸우뚱거리며 궁리하다 아쉬워하고 감동받았습니다. 각각 또랑또랑해서 고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볼 때마다 도대체 ‘희곡은 무엇인가?’, ‘어떤 작품을 감히 좋다고 말할 수 있나?’란 원론적인 질문에 시달립니다.
먼저, ‘희곡의 꼴’을 갖추었는지를 살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무대의 힘을 한껏 발휘할 텍스트인지를 가늠했습니다. 문장이 섬세하고 맛깔스러워 소설로 꾸리거나 영상언어로 펼치면 더 풍성해질 글들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장르의 문법을 빌려 희곡의 지평을 넓히는 시도가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약간의 지문을 가미한 대사로 전개되면 희곡일까, 줄글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러 인물에게 나누어 발화시키면 희곡일까. 왜 하필이면 ‘희곡’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궁리를 미룬 게 아닐까, 고민했습니다.
SF, 판타지 등 새로운 틀로 현실을 담으려는 작품들이 넘쳤습니다. 파릇파릇했습니다. 그런데 신박한 아이디어가 제안으로 남고 이야기로 육화되지 못하다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아이디어란 악령에 사로잡혀 정작 할 말이 무언인지를 잊는 마법에 걸린 셈입니다. 또한 이러한 신묘한 설정들을 설명하는 데 애정을 집중시켜 정작, 인물과 갈등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지는 사례도 목격했습니다. 허무맹랑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는 이해합니다만, 설명이 넘치면 의미와 재미가 앉을 자리가 줄어듭니다. 소재는 싱그러운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사례도 아쉬웠습니다. 전형적인 캐릭터, 빌려온 고민, 익숙한 코드의 게으른 조합 등은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담은 결과를 낳습니다. 아이디어와 색다른 형식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힘’을 지녔을 때 뜻 깊습니다.
「갓고와 김치컴」은 생동감 넘치고 대표성을 지닌 캐릭터와 쇼 무대를 방불케 하는 코러스의 활용이 돋보입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을 데리고 하고픈 이야기는 뭐였을까 라는 의문과 더불어 펼쳐놓았지만 밀어붙이지 못한 결말이 아쉽습니다. 곰삭히면 좋겠습니다. 「시간 저축은행」은 설정과 반전을 무기로 삼은 만큼 사건이 변화무쌍하게 흘러가며 소동극으로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시간이나 관계에 대해 작가가 내린 결론이 낯익습니다. 만만치 않은 화두를 붙들었으니 작가 나름의 결론을 맺어 풍성한 의미까지 거두시길 기원합니다. 「가족력」은 시를 방불케 하는 참신한 표현과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가 그득한 작품입니다. 에피소드들의 생경함은 독특한 심상을 만들어내 갤러리 벽에 걸리고, 인물들의 독백은 이어져 스크린에 투사됩니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시선과 아름다운 언어가 만나 ‘읽은 텍스트’로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상태와 심정을 다양하게 변주하여 두텁게 발라주지만, 표현의 풍성함에 비해 사건이나 의미구현은 도돌이표를 찍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면분석이나 독백, 화자의 활용은 소설에는 맞춤이지만 무대에 적합한가, 심란했습니다. 「청어의 뼈, 코트나 바닥」은 실험성이나 도전정신이 빼어납니다. 감각적인 대사, 캐릭터, 인물을 주제로 밀어내는 상황이 빛을 발합니다. 영상의 활용 방안을 궁리하고 남다른 표현방식을 모색한 점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과도합니다. 장소 이동도 불필요하게 잦고 등장인물도 넘쳐나니 분량도 훌쩍 불어났습니다. 「불청객」은 당대의 고민을 두 인물을 통해 간결하게 무리수를 두지 않고 차근차근 펼친 작품입니다. 문제의식이 돋보이고 현실에 대한 분석도 날렵합니다. 다만 2인극인데 두 인물 사이에 힘의 균형이 무너진 점이 아쉽습니다. 한 명에게 너무 힘을 실어주어 다른 인물은 비난의 대상으로 머물렀습니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면 싶었습니다.
「스파링」은 권투 경기장이란 무대 표현 방식, 청소년 둘을 설정해 이들의 고민이나 그들을 짓누르는 현실을 팽팽하게 담아냈습니다. 갈등요소가 때맞춰 기다렸다는 듯 등장하는 점에서 살짝 작위적이란 인상도 받았지만 현실의 모순을 이야기에 녹여내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는 장점이 이겼습니다. 두 인물이 마주 보며 웃는 마지막 장면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푸릇푸릇했습니다.
무대를 그리고 그림을 펼치고 이야기를 들려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김나정, 정범철
· 평론 부문
이번 제20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총 21편으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7편이다. 그중 본심 심사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Fake Article에 대한 시론-문학으로서의 지적 사기」, 「위악의 잉여-이준규론」, 「닫힌 자들을 위한 플랜 B」, 「감각의 질서와 그녀들의 환상통-김행숙의 <사춘기> 다시 읽기」, 이렇게 4편이다. 네 작품 모두 범상치 않은 야심과 패기,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문학적 독해력을 갖추고 있어서 뜻밖에 한국문학의 미래를 낙관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Fake Article에 대한 시론-문학으로서의 지적 사기」는 정보통신기술이 급속하게 발달한, 소셜 미디어 중심 사회에서 전통적인 소설 장르의 쇠퇴 이후 어떤 새로운 소설 장르가 가능한지를 타진하는 글이다. 이 글은 전통적인 소설장르의 분화(分化)와 변이를 추적하면서 한국문학 생태계의 변화를 전망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의 사례로 제기된 작품이 발표된 지 10년도 더 된 소설이거나 페이스북 게시물이라는 점에서 이런 주장들이 현재 시점에서는 설득력을 얻기가 어렵다는 인상이다. 지금의 한국문학 전반의 변화에 좀더 밀착된 논의가 더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악의 잉여-이준규론」은 라캉의 욕망이론에 기반해 이준규 시의 반복과 반복 속 변이라는 언어놀이를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불가능한 욕망의 운동으로 해석하고 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분명 기존의 익숙한 소통 논리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과 논리로 자기만의 폐쇄적 유희를 반복하는 이준규의 시를 분석하기에 적합하지만, 이 글에서 라캉의 이론이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개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시인의 언어를 따라하듯 논리적 비약이 자주 발생하는 모호한 문장들은 이준규 시에 대한 접근을 오히려 가로막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적 난해를 통해 이준규 시를 분석하려는 야심찬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닫힌 자들을 위한 플랜 B」는 강화길의 작품들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성장을 모색하는 보통의 플랜 A의 실패 이후, 오직 고통에 대한 의식으로 가득한 자기 안에 닫힌 채 탈출구를 찾는 플랜 B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참신하고 흥미로운 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참신한 발상은 강화길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도달하지 못한 채 이 글은 평이한 작품해설에만 머물고 만다. 강화길 소설에 대한 분석이 전체 한국사회와 문학의 흐름 속에서 포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도 아쉽다. 좀더 포괄적인 비평적 관점이 요청된다.
당선작인 「감각의 질서와 그녀들의 환상통-김행숙의 <사춘기> 다시 읽기」는 2000년대 미래파와 2010년대의 새로운 서정론이 기존 시의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시적 선언을 했다는 점에서는 주목할 만하지만 여전히 남성중심적인 발상 때문에 여성 시인의 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음을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일단 기존 시단에 대한 자기만의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를 드러내는 문학적 야심이 놀랍고 반가웠다. 계속해서 이 글은 김행숙 시에 나타난 환상을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과 환상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이 아니라 현실의 표층과 심층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김행숙 시의 환상을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무르익은 듯 적실한 문학적 통찰과 한국문학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돋보였다. 진심으로 당선을 축하한다.
오랜 논의 끝에 당선작은 「감각의 질서와 그녀들의 환상통」으로 선정되었지만 최종심에서 논의된 다른 작품들이 보여준 문학적 도전은 이후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더 풍요롭고 새로운 한국문학을 위한 이들의 도전이 계속되기를 바래본다.
심진경, 한기욱
· 동화 부문
제20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 부문 응모작은 예년보다 줄어 총 28편이었다. 창작 열의를 북돋고 동기 부여해 줄 관계와 만남들이 팬데믹 장기화로 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그럼에도 문학의 힘을 믿고 동화의 길을 꿈꾸는 이들이 꾸준하다는 사실이 더없이 소중하고 든든하다.
본심에서는 일곱 사람의 작품을 논의했다. 먼저 「써니 사이드 업」과 「카이온의 전설」은 이야기꾼의 입담이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써니 사이드 업」은 달걀 프라이의 고수 집안에서 비법을 전수한다는 설정으로 익살과 능청이 즐거운데, 주제가 너무 드러난다. 함께 투고한 작품도 기대감을 주다가 그냥 끝이 나, 일상 에피소드를 뛰어넘는 중심 사건과 문제의식이 아쉬웠다. 「카이온의 전설」은, 액자 구조로 이야기성이 풍부하고 형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플롯도 짜임새 있고 문장도 유려하고 결말도 상큼한데, 단편 아닌 장편의 줄거리를 읽은 느낌이다.
이 작품과 함께 응모한 「에이전트 z을 향해서」와 다른 응모자의 「언니에게」는 소외 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다루고 있다. 힘겨운 현실을 허구의 힘으로라도 맞서고자 하고 약자의 동질감으로 따뜻한 연대의식을 보여주는 어린 인물들이 안타깝고 마음을 움직이는데, 익숙한 글감이 주는 기시감의 아쉬움이 어쩔 수 없이 남는다. 「우리 집 밥그릇은 수영장」은 나가 놀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아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하며 재기발랄한 상상으로 즐겁게 해소해 주는 작품인데, 역시 종종 접했던 동화라는 느낌을 준다.
「한정한은 로봇일까」는 주인공의 심리에 밀착한 차분한 서술이 안정적이고 설득력 있는데, 의심하며 갈등하는 과정이 너무 긴 데 비해 심경 변화가 일어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결말부가 너무 급박하다. 이미 많이 다뤄진 이야기고 관점의 새로움이 보이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함께 투고한 「내가 범인을 봤어」는, 독자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추리물 형식으로 동심이 녹아 있고 동화의 미덕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어수선한 정보와 인물들을 간결하고 짜임새 있게 다듬으면 좋겠다.
당선작을 고르며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은 「테일러의 테일러의 테일러」이다. 난치병을 앓는 친구를 지켜보는 당혹감과 안타까움을 환상적 장치로 잘 나타낸 작품이다. 절제한 감정선 처리가 세련되고, 함축적인 대사 처리도 돋보였다. 뻔하지 않은 전개로 익숙한 소재의 한계를 벗어난 점도 좋았는데, 판타지적 설정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던 이야기가 중반 이후로는 현실 동화로 기울어 작품 분위기가 달라지고 결이 흐트러진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이 개성이 좀 약하고 무난한 데에 그친 것도 망설인 이유이다.
마지막 작품 「천국에서 만나요」는, 수명이 한없이 길어진 200여 년 뒤의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노인의 결단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우주 탐사를 함께 떠났던 동료였다가 사고로 귀환하지 못한 할머니를 내내 그리워하며 아픔으로 간직하고 있는 할아버지도 공감이 가고, 주인공의 심경도 설득력이 있다. 할머니 캐릭터를 진부하지 않게 설정한 것도 좋았다.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 외에 가족제도나 사회 시스템이 지금과 다르지 않고 기술 수준도 바로 실현 가능한 것들인 점이 아쉬웠으나, 잔잔한 유머들이 죽음의 주제와 어우러져 빛을 발하고 작품의 기품을 살려주는 데서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해 보며 당선작으로 흔쾌히 정하게 되었다.
꾸준한 정진을 당부하며, 다른 응모자들도 조금만 더 노력을 기울여 진일보한 작품으로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당부드린다.
이병승, 임어진
취소